가장의 근심
from 깨나르한 생활 2016/07/20 16:20

<본지는 징계위에 제출된 녹취록을 입수했다. 그 녹취록 전문과 녹음 파일을 공개한다.>
교육부 대변인/개인적인 생각이라고 하니까
경향신문 부장/개인적인 생각이라도 그런 생각을 가진 분이 우리 공직에 계신것이 저희는 상당히 유감스럽고요. 대변인/부장님 저기 그래도 그래도 제가 말씀드리면, 또 저하고 부장님과의 관계.
경향 부장/누구와의 관계?
대변인/저하고 부장님과의 관계 또 그런 부분에서 또 이렇게 이런 자리를 했는데. 너무 또 좀 그렇게 하는 거는, 제가 또 죄송스럽고. 그래서 이거는 정말 순수하게. 아까 그 뒤의 부분은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하시고 그렇게 정리를 하시고.
경향 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만약에 공직자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세요? 대변인은? 네?
대변인/아니 그거는 이제 표현의 부분인데.
경향 부장/ 제가 누구인지 알고 계신 상태에서 지금 얘기를 하셨는데.
대변인/그거는 표현의 부분인데
경향 부장 /저를 뭐 너무 가볍게 생각하셨든지, 뭐 어떻게 그랬을 수 있지만, 결론..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전혀 그런 게 아니고.
경향 부장 /그런 거 아니고. 별로 문제의식 못느끼시죠 지금? 네?
나 전 기획관/아니 저는 그렇게 생각할 줄은 진짜 몰랐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공직자로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느냐, 공사.. 공사 간을 떠나가지고 어떻게 공직자로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고위 공직을 하고 있느냐에 대해서 문제 제기하신 거 아닙니까. 근데 솔직히,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렇게 생각하실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안했어요. 꿈에도 생각 안했고.
경향 부장/제가 그러면 동조하실 거라고 생각하셨나 보죠?
나 전 기획관/아니,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실 거라고는 생각을 안했다는거죠.
경향 부장/ 그럼 어떻게 생각하실 거라고 생각하고 저한테 그런 얘기를, 편하게 얘기를 하셨나요? 네?
나 전 기획관/ 개 돼지라는 이야기는 왜 나왔냐면, 그 뭐에요 베테랑인가 그 영화 있잖아요.
경향 부장/네, 내부 고발 그 뭐지? 그거? 내부자들.
나 전 기획관/거기서 어떤 언론인이 이야기를 한 내용이잖아요. 그거를 그냥 저는 그냥 인용한 거에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경향 부장/인용을 어떻게 그런 방식으로 인용하실 수 있으세요? 네?
나 전 기획관/그걸 공직자로서 이야기한 게 아니고. 공직자로서 이야기한 게 아니고.
경향 부장/아니 개인이어도. 제가 지금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으로서 지금 여기 와있습니다. 저를 어떻게 보길래, 그렇게 얘기를 하셨냐고요.
나 전 기획관/알겠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제가 제가, 경향 신문의 부장으로 계시는 거를 제가 잠깐 망각하고 잠깐 망각하고. 그냥 이렇게 편하게 대했다고 그렇게 생각해주십시오. 죄송합니다.
경향 부장/ 그게 본인의 생각이라는 거죠? 개인적인 생각?
나 전 기획관/그렇지요.
경향 부장/알겠습니다.
나 전 기획관/그런 거였어요.
경향 부장/몇시 차라구요?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
교육부 홍보담당관(과장)/10시 반입니다.
경향 부장/가셔야겠네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
과장/부장님 감사합니다. 오늘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부장님 뵙고 싶어서.
나 전 기획관/저도 한잔 주십시오. 그래서 그런 거에요.
경향 부장/진짜 어이가 없네요. 영화 대사 말처럼.
과장/부장님 감사합니다.
경향 부장/네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
경향 부장/본인의 생각은 변하지 않으셨다는거죠?
나 전 기획관/그거는 다음에 만나서.
경향 부장/다음에 얘기해주세요.
과장/한달 후에.
경향 부장/○○씨(동석한 기자)한테 전해주셔도 됩니다. 저는 시간이 없으니까.
나 전 기획관/네네 알겠습니다
경향 기자/다음에 왜 만나요.
경향 부장/그러게.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19/2016071903315.html


이 아이들을 곁에서 보고 같이 얘기하고 크고 작은 체험을 함께 하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두렵다. 어쩌면 이 두려움은 아이 키우는 재미보다 더 큰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은 내가 말한 그대로 말하고, 내가 행한 방식 그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많은 것이 부모로부터 오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기만의 것을 스스로 조금씩 만들어간 것의 총합이라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이 자기만의 것은 아집일 수도 있고, 고유한 정체성일수도 있다.

아이와 내가 공유하는 것은 주로 어리것은 삽화들이다. 생활은 아둔한 삽화들의 모음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커가고 있다. 아이들이 커간다는 것은 물론 내가 늙어간다는 뜻이고, 아이들이 철들어간다는 것은 조만간 그들이 내 곁을 떠나간다는 뜻이 될 것이다. 사실 삶은 매 순간순간 안타깝고 안쓰러운 것들로 엮여 있지 않은가?

개개인은 어떤 점에서 서로 유사하지만, 그보다 많은 점에서 너무나 다르다. 그러니 아이들이 각자에게 맞는 일을 찾고, 이 일에서 의미를 구하는 것은, 그래서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것은 사실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이 점에서 시행착오는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교육자의 임무란 잘못을 막아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잘못된 자를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괴테는 옳게 썼다. 그는 학생으로 하여금 “그 과오를 잔에 가득 채워 완전히 마셔 비울 때까지 내버려두라(seinen Irrtum aus vollem Bechern ausschlürfen zu lassen)”고 썼다. 그는 남의 길을 똑바로 걸어가는 많은 사람들보다 방황 속에 자기 길을 가는 몇몇 사람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아마도 가장으로서의 나의 근심은, 살아가는 한, 계속될 것이다. 삶의 불확실성은 분명 나보다 오래 살 것이다. 그러니 나 역시 가끔씩 오드라덱처럼 공허한 웃음을 짓고, 나무토막처럼 할 말을 잊은 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살아가는 기쁨, 여기 이 자리에서 숨 쉬면서 뭔가를 나누는 공존의 즐거움보다 그 근심이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 키우는 두려움 역시 삶의 기쁨의 일부여야 마땅하다. 나날의 기쁨을 외면하지 않은 채 커가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 그러면서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믿고 기다리는 것, 그래서 결국 ‘태어나면서 하게 되어 있는 일’을 조금씩 실행해가는 행복을 아이들이 누리게 할 일이다.


부럽다. 나의 아이이지만 한 인간으로서 나는 가지지 못한 것들이 이미 있는 나의 아이가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두렵다. 나보다 많은 것을 가졌지만, 그것이 없어지거나 의미 없는 것들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한편으로는 아이의 부모로서 두렵다.

"다음에 왜 만나요"
우리는 다른 생각을 가졌기에 만나도 할 이야기가 없을 것이라는
행간에 묻어나는 당신과 나는 다시 만날 일이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
그 밑에 깔린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진다.



2016/07/20 16:20 2016/07/2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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